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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윤정 <행복한 돼지>, acrylic & line tape on canvas, 72.5 X 60cm, 2013

 

 

 

                                                                                                                                이진성(소노아트컴퍼니)

 

  화면 위에 얹혀진 다양한 형태의 작은 캔버스들, 소재를 평면적으로 구축하고 있는 검정 라인테이프와 단순하면서 밝은 색감, 이러한 점들이 바로 작가 이윤정의 도드라진 작품 특징이다. 중첩된 캔버스의 사용과 부유하는 듯한 형태의 율동 그리고 평면적인 사물 표현은 동양화의 주된 표현 기법에서 온 영향으로 해석된다.
 
우선 여러 개의 캔버스를 겹쳐서 사용하는 것은 동양 산수화의 삼원법(三遠法)이라 일컬어지는 다시점 투시법에서 영향을 받았다. 이 투시법은 산수 풍경을 표현할 때 밑에서 올려다 본 산과 산 중턱 만큼 올라서서 바라다본 모습, 정상에 다다라서 내려다본 산의 형상을 하나의 모습으로 담아 내는 기법이다. 그러면서도 각각의 시선들이 어색하지 않게 섞여있다. 이는 산이라는 하나의 자연물을 관찰함에 있어서도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는 열린 사고를 반영하는 산수화의 기법으로, 서양 풍경화의 원근법이 일정한 정해진 위치에서 관찰되어진 모습을 화폭에 담아 내는 일점 투시법과는 다른 기법이다.
 
  두 번째, 평면적인 사물 표현에서 주목되는 외곽선은 정확하게 화폭에 구획된 형태를 그려서 나타내는 먹 선 자체가 화자가 되는 동양화 표현이다. 그리고 이런 선은 ‘먹물로 그림을 그린다’고 하지 않고, ‘먹으로 치다’라고 일컫는다. “난을 그린다” 거나 “대나무를 그린다”고 표현하지 않고, ‘난을 치다’, ‘죽을 치다’라 한다. 흰 화선지에 먹물을 머금은 붓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하기 보다는 공간에 붓 자국을 올려, 얹힌다는 얘기로 읽힌다. 이러한 형태 표현을 작가는 먹물 대신에 검정 라인테이프를 이용해서 대치시키고 있다.
 
  이상과 같은 동양화의 주된 표현 양식들이 작가 이윤정의 작품과 맞닿아 있는 지점이다. 캔버스들의 조합으로 이뤄지는 화면의 구성은 형상 표현에 있어서 굴곡들과 왜곡된 형태들을 계산해서 산수화의 다시점 투시법을 화면에 나타내고 있다. 더불어 작가가 나타내고 있는 검은 실루엣은 동양화의 선을 연상케 하면서 동시에 화면 밖으로 벗어나 벽면으로까지 작품의 여운을 확장시켜나간다. 이곳에 놓여지는 미술품의 틀에서 나아가, 마치 화폭 위에 작은 다면형태의 캔버스들이 올려지는 것과 같이, 다시금 더 큰 화면으로 작품이 부유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공간을 치고 있다. ‘공간을 치다’라는 표현에는 단순하게 ‘공간을 그린다’라는 뜻과 더불어 ‘공간에 얹힌다’는 의미를 더해본다. 하얀 화선지 위에 빼어나게 그려진 난을 상상해 보자. 난 잎들의 잎사귀가 끝나는 지점에 붓이 드러내는 놀림과 여백에서 주는 아스라함은 단순히 시각적으로 보이는 검은 선의 그음과 멈춤이 아니다. 지속되고 있는 듯한, 혹은 잎사귀가 자태를 바꿔가며 모양을 변형하는 듯한, 하나의 정답으로 규정될 수 없는 모호한 여운으로 말미암아 관람자의 상상을 자극하지 않는가.
 
  그러한 동양화의 긴 여운들을 캔버스 위에서 라인테이프로 표현하고 있는 작가의 작품은 간략한 설명조의 형태와 선명한 색감으로 단순 명료한 대상들의 설명을 이어가고 있다. 일상 생활에서 묻어 나오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작품의 소재가 되고 주제가 되었을 때, 작가 이윤정의 작품 특징들은 더 배가 되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