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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석 <정글>, Oil painting on canvas, 22 X 27cm,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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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성(소노아트컴퍼니)

 
 익숙하고 단순한 이미지의 사용과 그것의 반복적인 노출 그리고 이들의 조합과 혼재됨, 그 안에 보이는 색감과 형상 등 이러한 요소들은  지속적으로 작가 장우석이 드러내는 작품이미지들이다. 현재 작가가 보여주는 작품은 서양 고전미술 가운데 르네상스 시기의 명화 가운데 일부 도상들에서 형태를 차용해서 보여주는 것들과 스탬프를 제작한 뒤 이를 찍어내는 반복적인 의식을 통한 캔버스의 구성, 몇몇 스탬프의 반복적인 사용으로 인하여 전혀 다른 이미지의 연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통한 반복적인 드로잉으로 구성된 ‘디지털 컴퓨터 드로잉’과 같은 표현 방식으로의 작품 구연에 있다.
 
 그리고 여러 가지 형태의 작품 구성에 있어서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은 익숙한 이미지의 사용과 이들의 반복에 있다. 여기에서 누구나의 눈에 익숙한 형상들은 고전이 되어 버린 명화들의 도상 차용과 스탬프로 옮겨진 갖가지의 동식물을 망라한 구성 요소들로 분류할 수 있다. 이러한 형태들을 가지고 작가가 드러내는 형상과 표현의 방법들은 순차적으로 점차 다양하게 변해 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상과 같은 이미지들의 반복적인 사용이 장우석이 그간 해온 작업들에서 맥을 같이 하는 것이라면, 과연 일련의 작업 과정에서 보이는 작가의 태도는 어떤 것인가. 작가의 작품 구성에 있어서 동어 반복적인 이미지 사용은 팝아트에서(흔히들 쉬운 이미지의 컬러풀한 사용을 이렇게 분류하여 읽어내곤 한다)  사용하는 차용 및 단순 명료한 색감의 반복과 어떠한 유대를 가지고 있는가. 이런 의문점이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러한 몇몇 물음들에 대해 그 답을 규정짓거나 명명하는 것은 바른 접근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단지 추측컨데, 정작 작가가 드러내는 작품 표현의 방법은 어렵고 까다로운 철학을 담아내고 있기 보다는 일종의 놀이적 차원에서의 가볍고 재미있는 유희적 접근이지 않을까 싶다. 단순하고 쉽게 그러면서도 익숙한 것들의 조합을 통해서 작가는 나름의 이미지 놀이로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의 중첩과 반복, 표현의 반복을 통해서 말이다. 일련의 이러한 작가의 놀이는 그가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작품 활동이라는 유희의 방법을 통해 비로서 드러나게 된다. 그렇기에 작가의 작품은 쉬운 듯 보이지만 찬찬히 그의 작품을 분석할라치면 난해하게 보일 수 있는 부분이 산재해 있다. 그러면서도 장우석이 드러내는 색감들은 어떠한 것으로 규정되기 보다는 자유분방하게 펼쳐진다. 색감이 지닌 어떠한 특징이라기 보다는 형태를 표현하는데 있어서의 방법적인 차이라고 읽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어느 작가에게나 작품은 일종의 유희이다. 삶의 유희 이거나 철학적인 유희이거나, 복잡 다대한 놀이인 게다. 장우석에게 있어서 그의 작품 활동도 그런 의미에서 놀이이다. 작가의 제작 태도나 작품의 성격을 그러한 산물로 읽는 것이 타당하지 싶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일련의 이미지 놀이를 통해 보여지는 활동이 결코 가볍다는 뜻은 아니다. 방법적인 측면에서 작가가 선택한 형식일 뿐이다.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이미지 놀이로써 말이다.